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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레21(2011년6월3일): 조리전공 채낙영 동문 기사
작성자 : 학과 작성일 :2011-06-05 20:06:15 조회수 : 867











당신이 조금 흐릿한 정신으로 집에 돌아가는 깜깜한 밤에 ‘소년상회’는 거짓말처럼 그곳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술자리에서 너무 열심히 떠들었다는,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한 발도 더 다가가지 못했다는 허전함 때문에 당신은 포장을 젖히고 그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익숙한 우동이나 곰장어가 아니라 세련된 재즈 음악, 아기자기한 실내장식, 명랑한 얼굴의 20대 손님들, 파스타 접시와 소주잔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장난기 가득한 앳된 얼굴의 주인은 그저 요리를 하고, 손님들이 왁자지껄 당신을 환영할 것이다. 원래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손님들이 모두 일행인 듯 자리를 바꿔 앉아 당신과 잔을 부딪힐 것이다. 그래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순간. 정확히 4분30초를 삶는다는 탱글탱글한 파스타의 면발과, 청량음료만큼 톡 쏘는 뜻밖의 소주와, 극세사 이불 같은 밤공기처럼 사람들이 서로 섞여드는 기분 좋은 순간. 그걸 만들어내는 소년상회의 셰프 채낙영(27)씨를 만났다. 그의 인생에는 어떤 순간들이 모여 있기에 그게 가능한지 궁금했다.
























» 서울 화양동 건국대 부근에 있는 '소년상회'는 자정에도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포장마차다. 5월25일 밤 '세프' 채낙영씨가 파스타 요리를 내놓으며 밝게 웃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든 첫 요리






처음으로 직접 한 요리가 기억나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소풍 도시락을 직접 쌌어요. 케첩볶음밥. 어느 날 우리 반 애들이 선생님과 함께 서울랜드에 가기로 했거든요. 집에 아무도 없는 일요일 아침, 혼자 케첩에 밥을 볶고 계란 프라이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친구들 앞에서 도시락을 열기가 좀 창피하더라고요. 안 보여주려고 혼자 순식간에 먹어치웠죠.


요리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였는데요?
11살 때. TV에서 구본길 셰프를 보고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 때까지 집에 친구들을 열 몇 명씩 데리고 와서 라면이나 김치찌개 같은 걸 해먹였어요. 지금도 저 먹을 건 귀찮아서 안 만드는데 친구들이 오면 꼭 요리를 해요.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맛있다는 얘길 듣는 게 좋아서요.


그리고 그는 19살 때 대구보건대학 호텔조리과를 다니며 요리를 전공하게 됐다. 호텔 실습을 나가서 가까이서 본 요리사들은 군인같이 짧은 머리를 하고 회사원들처럼 상사 흉을 봤다. 일하는 시간과 품에 비해 보수도 적었다. 앞으로 요리를 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훌쩍 군대에 다녀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6개월 동안 호텔 레스토랑 주방 청소를 했다. 밤이면 쓰레기봉투에 우유나 식재료들을 가득 담아 훔치기도 했다. 돌아와서는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누군가의 추천으로 성사된 취직조차 일본 여행 때문에 포기할 정도로 철이 없었다.


그럼 처음으로 요리에 진짜 재미를 붙이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에드워드 권의 예스 셰프>에 나가게 되면서였어요.


<에드워드 권의 예스 셰프>는 에드워드 권의 수제자가 되어 함께 일할 자격을 주는 QTV의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으로, 2009년 9월부터 3개월간 방송됐다.


방송 출연이 알려준 요리의 재미


그때부터 요리가 갑자기 재미있어졌다고요?
그때도 전 철없이 방송 나가니까 이제 연예인 해야겠다는 얘기나 하고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진지했어요. 10일 동안 합숙하며 사람들이 요리 얘기밖에 안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같이 얘기하며 자연스레 요리에 흥미가 생겼고, 실력이 없다고 무시받으니까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합숙 기간이 끝나고 두 번째 합숙 전까지 40일 정도 비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재료를 사고 정말 요리만 열심히 공부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배울 게 너무너무 많으니까 재밌었어요.


참가자 중 다섯 번째로 떨어졌는데, 사람들 앞에서 이름표를 떼면서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할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막상 떨어지니까 담담하더라고요.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못 보여준다는 생각에 아쉽고 속상하긴 했지만요.


일상으로 돌아와 첫 번째로 한 일은 뭐였나요?
요리에 재미가 붙어서 제대로 일할 곳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모든 걸 걸고 열심히 할 곳을 찾다가 서울 도곡동의 ‘아꼬떼’(A cote)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들어갔어요.


정말로 모든 걸 걸었어요?
그럼요. 사실 일을 두 달밖에 못하고 나와서 소년상회를 하게 됐지만 그 두 달을 1년처럼 살았어요. 하루 16시간씩 일했고, 오로지 일 생각만 했어요. 일어나자마자 오늘 출근하면 뭘 해야 하는지 계속 체크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죠.


그 두 달 동안 뭘 얻었나요?
요리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그곳의 셰프가 굉장히 유별나고 엄격한 분이었어요. 주방의 위계 서열을 다 무시했고, <헬스 키친>의 고든 램지보다 더 말을 직설적으로 했어요. 높은 서열의 요리사라도 실수가 보이면 바로 설거지 담당으로 강등되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그럼 이 일은 이제 누가 할래?” 할 때 자원해서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 바로 그 일을 맡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죠. 그러다 보니 다들 경쟁이 치열해서 감자 하나를 썰 때도 심혈을 기울였어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언제든 치고 올라갈 기회가 있었으니까. 스태프들 밥을 할 때 하루씩 돌아가며 혼자 6~7인분을 다 준비해야 했어요. 일종의 테스트였죠. 맛없으면 다 버리고 도시락 사다 먹자고 하니까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실력은 부쩍 늘었죠.























» 모르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게 소년상회만의 매력이다. 소년상회에서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정신 차리라는 말에 시작한 포차


실력은 늘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셰프의 요리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요리를 사람들에게 내놓고 싶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몇 개월 단위로 연이어 찾아올 만큼 상황 전환이 빠른 것은, 마음먹은 일은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하는 성미 때문일 것이다. 엉뚱한 아이디어가 많은 만큼 불안하기도 할 법한데, 전혀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다. 포장마차 소년상회는 요리하는 선배가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너 그럴 거면 포장마차나 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어 그거 괜찮겠는데?’ 하는 넉살에서 출발했다. 자정에도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포장마차라면 비싼 돈 주고라도 일부러 찾아갈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 손님이 기억나나요?
지난해 4월19일에 오픈을 했어요. 첫날이랑 이튿날에는 아는 사람들만 매상을 올려줬고, 그 다음날에야 첫 손님이 왔어요. 여대생들한테 ‘바싹 돼지보쌈’을 팔았어요. 맛있다고 하니 기분은 좋았는데 양이 너무 적다고 해서 그럼 반값만 달라고 4천원에 팔았어요.


메뉴가 한 달에 한 번씩 바뀌죠? 가장 인기가 좋았던 메뉴는 뭐예요?
인기가 좋아서 한 달보다 오래간 요리는 ‘바싹 돼지보쌈’이랑 ‘카레 스튜’.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는 ‘방어 빠삐요뜨’. 유명한 요리평론가와 영화감독이 와서 미슐랭급의 맛이라고 칭찬하고 잡지에 소년상회를 추천하기도 했거든요. 지금 하지 않는 요리라도 장 보기 전(오후 1시 이전)에 손님들이 미리 연락만 주시면 원하는 걸 해드리기도 해요.


실패한 메뉴는요?
이틀 하다 만 게 있어요. 해산물볶음인데, 작은 꼴뚜기 같은 서양 해산물에 먹물 소스를 넣어서 하는 레스토랑 메뉴를 본떴어요. 그런데 양이 적으니까 포장마차에는 안 맞더라고요. 대부분의 메뉴는 새로 내놓고 이틀 정도는 불안정한 상태고요, 손님들 반응도 살피고 노하우도 쌓으며 점점 요리가 완성돼가는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재료가 따로 있나요?
마늘종요. 제 파스타에는 마늘종이 자주 들어가요. 아스파라거스 느낌이 나는 걸 찾다 보니 마늘종을 넣게 됐는데 생각보다 모든 요리에 잘 어울리더라고요.


제가 만난 단골 외상 손님은 외상값을 갚았나요?
갚았어요. 그분은 정말 단골인데, 먹다가 집에서 급하게 오라는 전화를 받으면 그릇째로 음식을 가져가기도 해요. 어느 날은 딸이 대신 갚으러 왔다가 딸도 술에 취해 그냥 가기도 하고. 그분이 청평에서 펜션을 해서, 소년상회 단골들끼리 소풍도 계획하고 있어요. 정육점 하는 형은 고기 가져가고, 저는 요리를 하고, 기타 칠 줄 아는 손님은 기타를 가져가고, 그런 소풍요.


싹싹 비워진 접시가 주는 행복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게 소년상회만의 매력이다. 어떤 손님은 앨리스가 들어가는 이상한 나라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도 한다. 겨울에는 장사가 안 된다고 2만원어치 먹고 10만원 주고 가는 손님도 있고, 시작할 때부터 셰프랑 똑같이 매일 출근하는 손님도 있다. 단골손님 랭킹까지 만들었다.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 다 모르는 사이였는데 이제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바쁠 땐 손님들이 자진해서 서빙을 하고 셀프서비스로 전환하기도 한다.

10년 뒤에는 어엿한 가게를 내고 5만원짜리 요리를 팔아도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요리를 파는 게 꿈이라는 낙영씨는, 일류 요리를 위압적이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먹는 건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다는 말보다는 싹싹 비워진 접시를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얘기는 자기만족보다 다른 사람의 만족을 위해 요리한다는 얘기다. 그 단순명료한 요리 철학이, 사람 냄새 나는 즐거운 레스토랑 ‘소년상회’를 기대하게 한다.글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사진 윤운식 기자 wy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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